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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한 도시에서  트인 바다로 

 팝 실험주의자의 변모

사진 출처; 가디언

12/1 줄리아 홀터 공연을 다녀왔다. 홀터는 호평받은 전작 ‘Loud City Song’ 이어 올해에도 수작 ‘Have You in My Wilderness’ 앨범을 발매하며 평단의 총아로 떠오르고 있다. 홀터 음악을 요약하자면, 작가주의적이며 학구적이라고 있다. ( 같이 레퍼런스 들먹이기 좋아하는 선비가 좋아할 음악이기도 하다ㅋㅋ)

그녀는 사랑하는 앨범으로 마쇼Guillaume de Machaut 노트르담 미사와 퓨전 시기의 마일스 데이비스, 로버트 와이엇, 앨리스 콜트레인의 작품 등을 꼽는다. 시공을 넘나드는 선배들 흔적을 그녀 음악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있다. 그러나 그녀 음악이 시종일관 난해한 것은 아니다. 2 ‘Ekstasis’ 까지만 해도 생소한 희랍 텍스트 등을 인용하는 지적인 수준을 넘어 고답적인 느낌마저 줬던 홀터지만 3 ‘Loud City Song’ 에서 접근이 용이한 가사를 쓰기 시작한다. 이는 골방에서 스튜디오로 넘어오는 악기 편성의 변화와도 궤를 함께 한다. 2집까지는 혼자 방구석에서 작곡하며 인디 작업 방식을 고수했지만, 3집에서부터 밴드 체제를 택하며 스튜디오 작업을 시작했다. 홀터는 ‘…Wilderness’ 앨범에서는 이러한 방향성을 더욱 밀고 나갔고, 이는 만개한 그녀의 재능과 어울려, 멋진 -발라드 앨범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이전까지 홀터의 음악을 흔히 avant-pop 이라고 묘사했다면, 이번 앨범은 avant-‘pop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신곡들은 놀라운 멜로디와 보컬 라인들로 가득 차있다.

홀터의 변신은 공연의 처음과 마무리 사이 대조에서 두드러진다. 공연은 ‘Loud City Song’ 불길한 분위기를 대표하는 Horns Surrounding Me 시작하여 ‘… Wilderness’ 앨범의 Sea Calls Me Home 밝은 톤으로 마무리되었다. Horns Surrounding Me 에서 홀터는 불협화음을 분출하는 호른 소리가 나를 둘러싸고 있다고 외친다. 그러나 공연 마지막, Sea Calls Me Home에서 홀터는 어느때보다 들뜬 목소리로 ‘I can’t swim, its lucidity, so clear’ 이라는 후렴구를 되풀이 한다. (물론 가사 마지막, 작은 반전을 주며 바다 역시 종착지는 아님을 암시한다)

어떤 측면에서 공연은 소란한 도시(‘Loud City’)에서 트인(‘Wilderness’) 바다로의 여행을 연상케 했다이러한 대비는 어두운 ‘Loud City Song’ 순백의 ‘Wilderness’ 앨범 커버에서도 단적으로 보인다.

공연에 앞서 김사월이 오프닝 액트로 나와 그녀의 신보 곡을 들려주었다. 김사월을 실연에서 처음인데, 라이브 실력이 매우 좋았다. 음원만 듣고는 라이브로 연주하기 어려운 보컬이라고 생각했는데, 굉장히 능숙하게 노래하셨다. 김사월 본인도 홀터의 공연을 고대한 같았다. 한편, 김사월과 홀터가 공유하는 지점 하나는 아마 린다 페럭스(혹은 퍼핵스)Linda Perhacs일테다. 김사월은 웨이브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션으로 직접 언급하기도 했고, 홀터 역시 페럭스의 밴드에서 공연한 적이 있다(올해 초에도 ).

김사월의 흡입력 높은 오프닝에 이어 줄리아 홀터가 등장. 머리를 세워 묶고 예상 외로 깜찍한 모습이었다. ( 꽁지를 공연 도중 소품으로도 활용하심ㅋㅋ) 홀터는 별다른 인삿말 없이 깔끔하게 공연으로 돌입했다. 홀터의 말투는 심심한 편이었는데, 이게 덤덤한 객석 분위기와 합쳐져 공연 분위기가 아주 친밀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관객수로 보아 공연장이 조금 작았으면 좋았을 . 뒤의 계단식 좌석으로 인해 관객이 분산되버림)

연주곡들은 며칠 일본 교토 공연과 흡사했고, How Long? 빠진 대신 In The Green Wild, Have You In My Wilderness 정도를 추가로 연주한 같다. 아래는 트위터에 올라온 셋리스트.


Horns Surrounding Me

In the Green Wild

Silhouette

Marienbad

This Is a True Heart

Lucette Stranded on the Island

Feel You

Everytime Boots

Have You in My Wilderness

Vasquez

Encore:

Betsy on the Roof

Sea Calls Me Home


보다시피 신보 Have You In My Wilderness 곡을 대부분 공연하고, 전작 ‘Loud City Song’ 에서 정도, 외에 Ekstasis 에서는 Marienbad 만을 공연했다. Loud City 좋아하지만, 신곡들이 실연에 적합했기에 이날 선곡에는 전혀 불만이 없었다. 홀터가 인터뷰에서 밝혔듯, 신보는 전작보다 보컬이 상당히 전면에 배치되었고 보컬 멜로디의 비중 역시 높아졌다. 뒤에 언급하겠지만, 홀터 음악은 헤드폰 끼고 듣는 최적화된 스타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3집에서 그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실연에서는 필연적으로 스튜디오 고유의 음향 효과를 희생해야 하는 만큼, 그를 보충하기 위해 연주자들의 카리스마적 기교(virtuosity) 요구된다. 홀터는 과제를 보컬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극복한 같다. 실연을 통해 앨범에서는 다소 절제된 홀터의 보컬리스트로서의 재능을 제대로 확인할 있었다. 보컬이 곡을 리드하는 신곡 스타일과도 부합해서 만족스러운 공연이었다.

이전보다 굉장히 라이브 진행이 노련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덧붙여 신곡들이 밝아진 것도 몫할 ). 사실 이날 공연은 두번째 보는 홀터 공연이었다. 2년전 피치포크 페스티벌에서, 한낮 찌는 듯한 야외에서‘Loud City Song’ 곡들을 듣는 무척 어울리지 않는 경험이었다. 연주 역시 마치 35도의 더위에 검은색 양복을 입고 서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당시 기억으로, 야외 페스티벌 특성 때문인지 사운드가 산만했고, 밴드메이트와의 호흡도 완벽해 보이진 않았다(알기로는 ‘Loud City Song’에서 처음 밴드편성으로 작업했다고). 아무튼 여러모로 음악인으로서 성장한 인상을 주었다.

Horns Surrounding Me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음반과 완전히 다른 소리가 들려서 당황했다(공연장 뒤편에서 들었다면 달랐을 수도). 공연 초반에는 음향이 흩어지는 했고, 소리가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다. 음반에서는 보컬 역시 다른 악기들과 동등하게 취급되는 편인데, 라이브에서는 보컬이 굉장히 도드라졌다. 한편, 홀터 음반을 들으면 바로 청각적으로 느껴지는 하나로 소리가 층층이 쌓여 있다는 (홀터 역시 스펙터를 좋아한다고..) 있다. 보컬 오버더빙이나 Loud City에서 종종 들려오는 불길한 앰비언트 음에서 보이듯, 홀터 음악은 앨범 감상에 최적화된 형태에 가깝다. 공연에서 리버브를 좀더 강조했으면 어떨까 싶다. ( 마치고 홀터가 객석에 보컬 리버브 어때요?’ 물어볼 제발 리버브 먹여줘!!’라고 외치고 싶었으나 용기가 부족했다...) 단적으로 Horns Surrounding Me 에서의호른소리가 들린다는 점은 아쉬웠다. (그래도 공연이 진행되며 소리에 귀가 적응했는 괜찮아지긴 했다 ㅋㅋ)

아무튼 공연에 금세 몰입할 있었다. 홀터는 내가 고대하던 This Is A True Heart 빼먹지 않고 들려줬다. 귀에 속삭이는 듯한 홀터의 보컬 매력이 만개하는 곡이다. 곡의 최강 포인트인 색소폰 솔로는 비올라 솔로로 대체됐는데, 이날 공연 아쉬웠던 하나로 색소폰이 없었다는 . 하지만 음원 사용을 자제하고 부족할지언정 연주자의 목소리를 그대로 들려주려고 하는 면도 솔직 담백하게 보였다.

홀터 보컬은 단어, 음절 사이를 미끄러지듯 유영하곤 한다. 또한 Feel You 에서의 “Can I feel you? Are you / Mythological?” 에서 보듯, 종종 다음 문장(Are you mythological?) 분절시킨다. 이는 각운(rhyme) 거의 쓰지 않는 그녀의 산문체 가사에 (싱코페이션 같은) 독특한 리듬감을 부여한다.

홀터의 가사들은 명확한 내러티브를 들려주기보다는 대개 인상 묘사에 주력하며, 독자에게 해석의 여지를 넓게 남겨두는 편이다(재밌게도 공연에서는 시작 전마다 곡은 ~~ 관한 노래에요라는 식으로 친절한 설명을 곁들이곤 했다). 특히 Silhouette 에서는 굉장히 세련된 방법으로 이미지를 그려낸다. 곡의 후렴구다. “Figures pass so quickly / That I realize my / Eyes know very well / It's impossible to see / Who I'm waiting for in / My raincoat.”

앵콜 마지막 Vazquez 에서 (LA 까마득한 선배) 도어스를 연상케 하는 싸이키 잼을 들려줬다. 싸이키 건반 위로 홀터는 바스케스라는 도적(혹은 의적…) 이야기를 읊는다. 특히 후반 베이스 줄만 가지고 민속적 선율 들려주는 베이스 솔로가 압권이었다.

앵콜 Betsy On The Roof 에서는 후반부에 폭발적 피아노 연주를 들려줬다. 이어 마무리 곡으로 Sea Calls Me Home 연주했다. 뮤비를 보면 가장 밝은 홀터의 모습을 있다. 마지막에는 한없이 펼쳐진 바다를 배경으로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부른다(멋있어…). 쨍그랑 거리는 하프시코드 반주에 휘파람까지 얹으며, 공연은 긍정적 에너지를 남기고 끝났다. 이날 12개의 적은 곡을 불렀지만, 대신 굉장히 몰입도 높은 공연이었다.

홀터 외의 다른 연주자들 역시 상당한 실력자라고 들은 것에 걸맞는 충실한 연주를 들려줬다. 두둑한 뱃심과 달리 과묵한 입심을 가진 드러머 형은 락과 재즈 드러밍을 오가며 홀터의 섬세한 보컬을 훌륭하게 보좌했다. 베이스도 그루브 넘치는 연주. 다만, 비올리스트 백업 보컬을 담당했던 분의 보컬은 기대 이하였다. 홀터에 비해 음색이 너무 정제되지 않은 듯한 아마추어적 보컬이었다. 컨디션이 좋았던 걸까? 참고로 바이올린 대신 굳이 비올라를 활용한 점이 눈에 띄는데, 홀터 음역대가 높은 편이라 비올라도 좋은 선택인 같다.

내가 변태라 그런지 관객들이 끝나기 무섭게 박수치는 아쉬웠다. 박수치기 몇초만 여운을 느낄 여유를 줬으면 하는 솔직한 심정. 아무튼 매번 좋은 공연 소개해오시는 김밥레코드 사장님께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김치포크(비하 아님ㅋㅋㅋ)로서의 위상을 유지해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