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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 Walküre - Richard Wagner

Conductor: James Levine
Brünnhilde: Deborah Voigt
Sieglinde: Eva Maria Westbroek
Fricka: Stephanie Blythe
Siegmund: Jonas Kaufmann
Wotan: Bryn Terfel
Hunding: Hans-Peter König
Production: Robert Lepage

(ㄴ귀찮아서 영어 그대로 퍼왔어요..)

11월의 마지막 날에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시리즈 중 하나인 발퀴레를 보고 왔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오페라이기에 표가 25000원이나 하는데도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결제화면은 공인인증서 인증 단계까지 가있었습니다(다행히 할인카드로 4000원 할인은 받았네요). 이 MET OPERA IN HD 시리즈는 CGV압구정에서만 상영합니다.

사실 제가 가장 좋아한다는 것 이외에도 이 극을 보러가는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작용했습니다.

1. MET LIVE IN HD 가 도대체 어떤 건지 궁금해서
2. 르파주(Robert Lepage)의 그야말로 획기적인 무대연출을 보고 뿅가서. 현지에서는 저 무대장치를 'the machine'이라고 표현하더군요.

<↑ 이 '기계'를 최고로 잘 활용한 장면이라고 생각하는 장면.>



네, 일단 공연'내용'은 훌륭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크게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사실 제가 3막은 맨 앞부분의 '발퀴레의 비행'만 보고 나와서 온전히 평가할 수는 없네요. 하지만 공연'외적'인 부분은 맘에 안 들었습니다.

 일단 모든 구성원들이 열심히 준비했다는게 느껴졌습니다. 디테일에서도 공을 들여 준비한게 보였습니다. 아마 이 부분은 반지 시리즈가 20년만에 메트에 다시 올려진다는 점과 지휘자 러바인의 취임 40주년이라는 점에서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나름 역사적인 공연인데(20년 후에도 러바인의 지휘로 볼 수 있을지는 장담못하죠), 리허설도 상당히 많이 했을 겁니다. (혹자는 칼 '노퉁'이 너무 허접하게 만들어졌다고도 하더군요. 저는 이미 다른 많은 연출에서 그런 조악함에 익숙해져서인지 별 생각 안들더군요)

 어제 공연(?)을 좋게 평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제가 지극히 1막의 빠돌이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1막에서도 광란의 환희로 치닫는 1막 피날레 부분이요. 공연 1막 후 인터미션 때 도밍고(그 도밍고 맞아요!)가 나와서 1막에 나온 성악가들에게 하는 얘기 중에 'the most exciting love scene, isn't it?'이라고 하더군요. 도밍고 옹의 영어 실력을 감안할 때 아마 'the most rapturous'라고 표현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합니다ㅋㅋ(도밍고 옹 죄송해요..).
 어쨋건 이 부분은 듀엣과 오케스트라의 반주 모두에게 최고의 기량을 요구하는 부분입니다. 밑의 두번째 영상에서 18분 30초 부분부터 집중해서 들어보세요. 정점으로 가는 부분인데 성악가와 오케스트라 모두 이 오누이의 광적인 사랑에 도취된 듯이 연주해야만 합니다!! 오케스트라는 미친듯이 현을 긁어주고 금관을 빵빵 터뜨려줘야 하고, 남자 주인공 지그문트는 '누이이자 아내인 지클린데와 함께 우리 벨숭 족이 번성하리' 라는 미친 내용의 가사를 사랑에 눈이 먼 이의 심정으로 불러내야 합니다.


<↑ 1940년대의 1막 피날레 부분. 여기도 메트입니다. 전설적인 분들답게 훌륭하네요-_-;>



<↑ 어제의 1막 피날레 부분. 듀엣이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하죠. 위의 전설적인 듀엣을 연상케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이 날 카우프만은 지그문트 역으로 데뷔했습니다. 상대역인 베스트브루크(Eva Maria Westbroek)는 메트 오페라 데뷔였구요. 저도 오페라 초보이긴 하지만 카우프만이 바그너를 부른다는 얘기는 좀 낯설었거든요. 비록 나중에 찾아보니 로엔그린도 나왔었고 바그너 테너 경력이 없는 건 아니긴 했습니다만, 과연 지그문트를 잘 소화해낼 수 있을까? 하는 약간의 걱정(25000원이나 투자했다는..!!!)이 들더군요. 공연 내용은 그 의혹을 불식시킬만큼 훌륭했습니다. 카우프만의 두터운 목소리가 원래 바그너 테너에 썩 어울리는 타입이기도 하고, 끊임없이 나오는 중음역의 가창대도 무리없이 소화해내는게 저에게는 꽤 만족이었습니다. 베스트브루크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잘 부르더군요. 하지만 1막 중반부까지 그녀의 가창은 약간 불안했습니다. 마음껏 소리를 못 내는 듯 해보였는데, 그 이후로는 잘 부르더군요.

 1막과 3막 사이에 끼어서 조금은 인기가 떨어지는 2막. 저는 2막도 좋아하는 편이라서 즐겁게 봤습니다. 프리카 역의 블라이스는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기는 가창을 선보였습니다.


그 외에 2막에서는 브륀힐데가 아버지의 명령과 오누이에 대한 동정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브륀힐데 역의 보이트는 좋았지만 역시 3막을 다 못들어서 평가 유보.


3막 초반부의 유명한 '발퀴레의 비행'은 무대 연출에서 호불호가 많이 갈리더군요. 실황에서는 공연 도중에 박수까지 나왔는데, 인터넷 리뷰들을 보면 좀 심심했다 하는 평가가 종종 보입니다. 2막 후 인터미션 때에서 진행자에게 '사실 저거 리허설하다가 옷이 기계에 껴서 급하게 잘라냈어요'라는 말도 하더군요. 그렇지만 저는 꽤 괜찮던데요? 저 '기계'를 저렇게도 사용할 수 있구나 하는 점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는데.


8명 발퀴레들의 앙상블은 좋아보였습니다. 다만 3막 시작하고 10분만에 나와야만 해서 전체적인 평가는 유보..

3막 나머지는 제가 영화관에서 보지는 못해서 온전히 평가하지는 못하지만, 3막의 절정인 피날레 부분은 아래 유튜브 영상을 참조할 수 있네요. 보탄 역을 베이스-바리톤 브린 터펠이 부릅니다. 사실 이 영상에서 터펠의 독일어 딕션은 그리 훌륭한 편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 거대한 오페라 끝부분에 가니까 힘이 많이 빠질 수밖에 없겠죠. 호흡도 자주 들이쉬는 것 같고...하지만 어차피 저는 독일인이 아니니까 상관없어요.
 이외에도 이 날의 주연급 성악가는 카우프만을 제외하면 모두 비독어권 출신이라, 이 딕션에 대한 부담감이 꽤 컸을 겁니다. 터펠도 2막 후 인터미션 때 진행자(Joyce DiDonato)에게 '요나스(카우프만)에게는 비밀인데, 사실 그의 발음을 많이 참조해요' 식으로 귀엽게 고백하죠.

<↑3막 피날레 부분. 베이스-바리톤인 터펠이 혼신의 가창을 뽐냅니다>





여기서부터는 공연내용이 아니라 공연 외적인 것에 대해 얘기해보려구요. 단점이 많습니다.

 공연 자체에는 매우 만족했습니다만, 영화관에 대해서는 불만이 좀 많습니다. 일단 음향문제가 좀 심각하더군요. 기본음량을 너무 크게 해놔서 소프라노의 고음이 올라가는 부분에서는 스피커가 찢어지겠던데요..실제 공연에서도 음악이 그렇게 크게 들리지는 않는데 상영관에서는 도가 좀 지나쳐서 가끔씩은 시끄럽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자막의 질은 나쁘지 않았습니다만 소소한 옥의 티가 눈에 띄더군요. 중간 인터미션의 영상물에서 'falsetto'를 'Falstaff'라고 생뚱맞게 번역하지 않나..영어 번역에서는 늘상 그렇듯이 내용 일부를 빼먹기도 하고 뉘앙스를 놓치기도 했습니다만, 그래도 오페라에서는 한글자막 해준 거만으로도 굽신굽신거리는게 우리나라 풍조라서ㅋㅋㅋㅋ 막상 리브레토 번역은 어땠는지 잘 모르겠어요. 제가 독어를 할줄 몰라서..
 하지만 계속 짜증났던게 2막부터는 자막 싱크가 안 맞았습니다. 계속 자막이 먼저 나오는데, 성악하고 자막이 따로 노니까 둘 중 하나밖에 집중이 안 되더라구요.

 또 상영시간. 공연이 20시에 시작해서 01시 넘어서 끝났습니다. 1시에 영화를 끝내면 차없는 사람은 집에 어떻게 가란거임? 그래서 12시 정각에 지하철 타러 나와야만 했습니다. 조금 더 일찍 시작할 수는 없는지? 1시간 일찍 시작하면 어디 덧나나요? 오페라 팬들이 호구로 보이니까 상영시간도 이따구인거죠...


 이런 단점들이 많아서 사실 다음부터는 MET LIVE IN HD를 보러가고 싶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25000원씩이나 내고 오페라를 보러 왔으면 기본적인 건 최소한 지켜줘야죠. 음질도 집에서 듣는 일반 CD만도 못하고(그 돈내고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스피커 찢어지는 소리 들으러 온 건 아니잖아요), 영상이야 화면이 커서 좋지만 사실 블루레이 DVD 사서 집에서 보나 화질은 별 차이는 없고. 저 막장스러운 상영시간은 집에 가지 말란건지, 압구정에서 밤 샐 곳이라고는 술집밖에 없는데 장난하는 겁니까? CGV 직원들도 다 퇴근했는데.
 저는 MET LIVE를 처음 본 거라서 경험삼아 간 거긴 한데 실망이 커서 다음부터는 집에서 블루레이DVD나 봐야겠네요ㅋㅋ 어쩌면 제가 겨우 3주 전에 빈 슈타츠오퍼에서 발퀴레 실연을 봐서 이런 배부른 소리하는 걸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