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음악

<유예> - 9와 숫자들

니흠 2014. 3. 30. 15:16

오랜만에 블로그 복귀 글이다. 작년 내내 미국에서 지냈는데, 좋은 공연도 많이 보고(밥 딜런, P4K 페스티벌 등등) 여러모로 많은 걸 느끼고 배운 시간이었던 것 같다(그런데 글을 쓰기가 왠지 두려워서 인지 갈수록 블로그에 글을 쓰기가 싫어지더라).




오랜만에 접한 한국 앨범 한 장이 워낙 좋아서 간단히 언급해보고 싶다. (사실 한 장 더 있다 -야광 토끼의 <Seoulight>)


9와 숫자들(이하 '숫자들')이 2012년에 발표한 비정규 앨범인 <유예>에 관한 잡설들이다.


<유예>(2012) - 9와 숫자들



1. 밴드명에 대한 언급을 해야할 것 같다. 사실 처음 밴드명 들었을 때 '어, 이거 뭐지? 굉장히 신선한데' 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작명 센스이다. 영어보다는 한글로 지은 것이 특히.. 아직 들어보진 않았지만 1집의 커버(아래)만을 보고 60년대의 사이키델릭 밴드 '? & Mysterians' 가 떠올랐다. (왜지??? 하는 질문을 잠재의식에 던져본 결과) 원래는 묘하게 닮았다고 우겨보려고 작정하고 글을 쓰고 있는데 의외로 해답은 간단한 곳에 있었다. 미스테리언스의 대표곡인 '96 Tears'에 9가 들어가서 그런 거였다. (물론 '9'와 '?'의 모양이 비스무리하긴 하다) 음악적으로 받은 영향은 적은 것 같다..(당연한 얘긴가...?)



    

 


(여기까진 진짜 잡설이었...)



2. 고백하자면 1집을 아직 안 들어보았다. 1집은 신스팝이라는 얘기가 있던데 (그리고 레퍼런스 밴드들을 비평가들이 늘어놓기는 했다만, 음반을 듣기도 전에 선입견을 가질까봐 다시 까먹으려고 노력중이다) 사실 <유예>에서 보여준 음악성도 굉장해서 1집에서는 어떤 스타일일지 무척 궁금하다. 아무튼 <유예>는 비정규앨범이라고 표현해 놓은 문구를 위키에서 보았는데 EP란 얘기로 알아 들었다. 1집은 <유예>를 좀 더 즐기며 듣다가 살 예정이다.



3. 처음 몇번 들으면서 밴드가 받은 영향들이 떠올랐다. 다른 리뷰어들이 많이 언급해주었을 테지만, 산울림과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잔잔한' 곡들과 감수성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다. 나른한 보컬도 그렇거니와 '몽땅'에서의 실로폰(으로 추정되는) 소리에서는 벨벳의 'Sunday Morning'(그러고 보니 글쓰는 지금이 일요일 아침이다)이 떠오른다. 또한 잔잔한 기타 핸드 피킹만으로 시작해서 점점 고양되는 곡인 '아카시아꽃'에서는 동요 '과수원 길'을 변용한다. 동요 앨범까지 작곡한 김창완-산울림의 내음을 맡을 수 있다. (근데 사실 맞춤법 상으로는 '아까시' 꽃이 맞다고 알고 있다)

 물론 숫자들의 음악은 여기에 국한되지 않는 좀 더 넓은 사운드스케이프를 보여준다. '아카시아꽃'과 '그대만 보였네' 등에서도 느껴지는 공간감 있는 기타 사운드 등은 이들이 범상한 포크 밴드가 아님을 넌지시 암시해준다. 리더인 멤버 9(송재경)의 이전 밴드인 그림자 궁전에서 들려줬던 작업의 영향이지 싶다.



3. 꽃들. <도쿄>를 발표했던 시기의 서니 데이 서비스 역시 언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9와 숫자들 뿐만 아니라 서니 데이 서비스 역시 폭넓은 사운드를 가진 밴드이기에 각각 <유예>와 <도쿄>시절로 한정해서 말하고자 한다. 사실 서니 데이 서비스는 이 앨범에서 컨트리 록의 요소도 상당히 많이 차용한 바 있기에 숫자들과는 여러모로 단순 비교가 무리가 있다. 아무튼 이렇게 수많은 한정 조건을 걸면서 까지 이 두 앨범을 비교하는 이유는 두 앨범에 나타나는 정서뿐만 아니라 바로 '꽃' 때문이다. 아래 유튜브 링크는 <도쿄>앨범의 첫번째 곡인 '도쿄'이다. 포크적 감수성이 두드러진다. 

한편,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담은 아래의 앨범 커버는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앨범 커버이기도 하다. 숫자들의 이 앨범에서도 '(벚)꽃'에 관한 언급이 종종 나온다. 그러나 <유예>에서의 문맥은 <도쿄>에서의 (벚)꽃이 연상시키는 화창함이나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플라타너스'에서 "예쁜 꽃들이 굳세게 피어나도 나는요 기쁘지 않아"에서와 같이 오히려 비애감을 표현한다. 이런 해석의 연장선 상에서 <유예>의 커버는 벚꽃이 지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東京>(1996) - サニーデイ サービス

<東京>(1996) - サニーデイ サービス


'東京' - サニーデイ サービス


묘하게 이 글을 쓰는 시기(우리 동네에도 벚꽃이 피기 시작했다)도 그렇고 '벚꽃'과 관련된 여러 음악들이 떠오르는 때인가 보다. 위의 <도쿄> 앨범도 그렇고 '벚꽃 엔딩'을 작곡한 버스커 버스커도 떠오른다.



4. (이건 진짜 잡설이다) 나는 인디 음반을 향뮤직에서 주로 사는 편이다(클래식은 다른 데에서 사고)(여담이지만 향뮤직 오래오래 번창했으면 좋겠다). 학교 앞이기도 하고 집 가는 버스가 안 올 때 시간 때우기에도 좋아서 자주 간다. 그동안 국내 음악인들의 앨범은 왠만하면 직접 구매하려고 노력해왔다(사실 토렌트, 소울식이라는 놀라운 도구를 두고 지갑에서 만원을 꺼낸다는 게 쉽지 않기는 하다). 해외 아티스트의 음반의 보유 비중이 월등히 높긴 하지만(사대주의 근성인듯..), 내가 좋아하는 앨범이라면 국내 앨범은 다운로드보다는 좀 더 사야한다는 의무감을 강하게 느껴 왔다. 리뷰를 쓰기에 앞서 구글링을 좀 해봤는데 연관 검색어가 나를 참 씁쓸하게 만들었다. '9와 숫자들'을 치니까 뜨는 연관 검색어 중에 '토렌트'가 있었는데 조금 안타까웠다. 요즘은 해외 음반은 Spotify 로 거의 듣고 있는데, 이에 대해 음악인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In Rainbows로 음반 유통업에 일대 사건을 불러왔던 라디오헤드(톰 요크)는 대표적인 반 Spotify 파이기도 하고. 

스트리밍 서비스에 대해 인상깊은 주장 중 하나는 '저렴한 값에 해적질을 합법화할 수 있다' 이다. 이 의견이 스트리밍 찬반 양쪽에서 다 쓰인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다. 찬성 측에서는 '해적질로 잃던 수익을 아티스트에게 돌려줄 수 있다'라고 주장하고, 반대 측에서는 '푼돈으로 음악인 착취를 심리적으로 합리화시킬 수 있다' 라고 주장한다. 둘 다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하다. 그러나 사실상 음악 산업은 점점 음반판매의 시대에서 공연티켓 판매의 시대로 넘어 가고 있기에, 그에 대해 음악계의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음악을 돈 내고 구입한다는 생각은 차츰 과거의 것이 되어 가고 있다. 아이튠스는 싱글이 '1달러'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혁명적으로 확산시켰고(이로 인해 1달러는 유사한 음원 판매 서비스의 준거 기준이 되어버린다) 곧이어 우후죽순 등장한 유료 스트리밍 서비스(멜론, Spotify, Pandora)에서는 한 곡의 금전적 가치가 몇 센트로 나타내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로 작아져 버렸다. 여기에 소리바다, 냅스터와 그 아류들 역시 음원 판매의 몰락을 가속화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게 앞의 현상과 사회학적으로 인과 관계에 있다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점점 커져만 가는 음악 페스티벌 산업 등에서 보듯이, 콘서트를 경험하는 것은 음악 팬들에게 하나의 필수 사항이 되가고 있다. 지산 페스티벌(아직도 이 이름인지는 모르겠다)은 3일간의 관람료로 이십여만원을 요구하며, 숙박 등의 부대사항까지 고려하면, 몇천 혹은 몇만 명이 한 아티스트를 위해 지갑에서 최소한 (음반 가격에 육박하는)만원 이상의 돈을 꺼내는 셈이다. 결국,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것이 되버린 '음원 구입' 행위를 이전처럼 되돌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예술가로서 음악인들의 자존심은 '내 음악이 지폐 한장 만도 못한 가격에 팔린다는 사실'과 '수익 극대화를 위한 음원의 범용화commoditization' 사이에서 갈등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