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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잠은 잘 자야죠.

니흠 2014. 4. 5. 16:54

아래는 몇년 전에 발매된 스콧 워커Scott Walker 의 앨범 <The Drift> 를 제작하는 영상이다. (좀 더 찾아보니 "Scott Walker: 30 Century Man" 이라는 다큐의 트레일러이다. 60년대까지 바로크-팝을 만들던 워커가 어떤 계기로 이런 실험적인 음악으로 돌아섰는지 좀 더 알아보고 싶다. 아무튼 이렇게 표현력이 풍부한 목소리, 한 때 히트 차트를 휩쓸며 잘 나가던 이가 좀 더 '쉬운' 음악을 하지 않고 이렇게 주류에서 벗어나고 은둔하는 예술가로 남은 것도 신기하다. 

영상 중간에는 녹음 과정에서 퍼커셔니스트에게 돼지 고기(소고기인가?)를 주먹으로 칠 때(?!) "좀 더 변화를 줘봐요. 퍽, 퍽퍽, 퍽 이렇게요"라는 식의 지시를 하는 워커의 모습이 나온다. 이 모습을 야구 모자 쓰고(영락없는 동네 아저씨 모습) 그 멋진 목소리로 진지하게 얘기한다는 게 깨알 웃음 포인트.

영상 마지막에는 브라이언 이노Brian Eno도 등장해서 워커를 찬양한다. 가사도 훌륭하다고 말하는데 가사에는 신경을 안 써봐서 잘 모르겠다.




워커의 이 앨범은 오밤중에 들으면 좋은 앨범이라고 생각하는데, 하지만 사실은 불면증을 치료하려는 앨범으로는 무리이다. 공포 영화에나 쓰일 법한 방식의 프로덕션 역시 괴이하다. 잠자리에 누워서 들으면 그 음향효과가 너무나 생생해서 잠이 안오고 오히려 정신이 말똥말똥해지게 만든다. 뜬금없이 등장하는 기타의 불협화음 폭격, 괴상한 마찰음 등을 들으면 사실 등골이 서늘해질 때가 많다. 소울풀한 워커의 목소리도 여기에서는 음산하게만 들릴 정도이다. 종종 그는 뚜렷한 선율 없이 쫓기는 듯한 톤으로 가사를 "읊는다"("Cossacks Are"의 verse). 제2빈악파의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가 "달에 홀린 피에로Pierrot Lunaire"에서 대표적으로 사용한 Sprechstimme 기법[각주:1]이 연상된다. 아무튼 주변이 조용한 시간에 들으면 이 음반에서 느껴지는 고립감을 제대로 체험할 것 같다. <The Drift>는 청자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청각적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앨범이다.


File:Scott Walker - The Drift.jpg

<The Drift> (2006) - Scott Walker





잠자는데 도움이 되는 음악을 찾고 싶어 들어온 독자들에게는 위의 앨범이 사실 낚시에 가까울 것이다. 그래서 야심차게 그 목적에 도움이 될 음반을 소개하고자 한다. 한국계 네덜란드 하피스트인 라비나 메이어Lavina Meijer가 필립 글래스Philip Glass의 곡을 연주한 독주 앨범이다.


<Glass: Metamorphosis, The Hours> (2013) - Lavina Meijer



사실 하프는 나에게는 무척 생경한 악기이다. 주변에 누가 연주하는 사람도 없고, 악기를 가까이서 볼 기회도 없었다. 그나마 예전에 조안나 뉴섬Joanna Newsom의 공연을 본 게 가장 가까운 하프 독주회였더랄까? (물론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나오는 하프는 자주 본다). 그런 면에서 작년에 라비나 메이어가 서울시향과의 협연을 위해 내한 했을 때 못 본게 무척 아쉽다(좋은 공연이었다고 들었다).


작곡가 글래스는 하프만을 위한 곡을 따로 작곡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앨범은 메이어가 온전히 자기 스스로 그의 곡을 (허락을 받고) 하프용으로 편곡한 내용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결과물은? 무척 훌륭하다. 글래스 특유의 부유하는 듯한 몽환적인 느낌을 하프로 너무나도 잘 포착해냈다. 하프라는 악기의 음색이 보통 오케스트라 속에서는 무척이나 튀는데, 이렇게 독주 악기로 갖다 놓고 보니 너무나도 차분하다. 곡의 녹음 역시 이런 분위기를 염두에 둔 듯하다. 말그대로 drone music 이다 (사실 듣다보면 앰비언트, 드론 쪽 음반 코너에 갔다놔도 손색이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 아래 링크는 앨범의 첫 곡인 "Glassworks" 이다.



글래스의 많은 작품들이 명상적인 분위기를 지닌 탓에 수면용 음악으로 적합한 측면이 적잖이 있긴 하다. 앨범의 다른 곡들 이런 부차적(?) 목적에 잘 부합한다.







  1. ('말하듯이 노래하는'에 가까운데 아무튼 정확한 우리말 번역이 딱히 없는 것 같다. 우리나라 음악학자들 너무 하다...) [본문으로]